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아나, 아나운서

최철미 2014. 2. 8. 10:11

아나, 아나운서

시험장심리로 떨리는 손 근시안 너머로 들여다본 작문제목은「혈」,「혈」참 해괴하다고 혀를 차면서도 어쩔 수 없이 써내려 간 것은 인류의 기원 인본의 구조 등등…

그대로 낭독했다가는, 요즘 방송윤리위원회가 발칵 뒤집힐 에로(틱) 구로(테스크) 잡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땡땡 울릴 때 다시 한 번  제목을 눈여겨보니 앗차! 그것은 구멍「혈」이 아니고 하늘「공」.어디 갔다 인제 왔나「장인 공」자여…. 근시가 유죄였다.

이 넌센스에서 느끼는 고소보다 더 씁쓸한, 블랙·커피 같은 웃음을,「아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기 어렵다.「아나」이외에도 애드(버타이즈먼트) 테레비(젼) 스트(라익) 데모(ㄴ스트레이션) 애지(테이션), 프로(파간다) 등등 일본식약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굴욕이 아닌지 무슨무슨 투쟁위원회의 유권적 해석을 듣고 싶다.

일본에서도 방송의 초창기에「아나운서」를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망설이던 기간에는「고우조우야」라고도 불렀고,「아나우메니 이까나이까?」라고 했다는 회고담을 읽은 일이 있다. 외래어의 약어가 생활화되고, 몇 개의 단어를 합성해서나 신조어가 속출하는 일본의 명치유신이래의 배외감을 우리가 이어받을 까닭은 무엇인가? 더욱이 기교(공) 가 특출하면 인기충천(공)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멍(혈) 이나 메운다는 견강부회인가?

아나운서를 아나로 부르는 것처럼 넌센스는 없다. 아나운서를 고지자라고 번역해놓는 사전조차 들추어 본 일이 없는 한 시골의 유생은 일필휘지하였으되 언어운사라… 이건, 좀 문·의가 일치했으나 안압운서라는 황혼의 엘레지도 있어 시체 말로 웃긴다. 반공포로를 방송(석방) 했던 우남선생이야 우리를 변사라고 불렀으니『이 때에 나타나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이수일 이었던 거디다…』어쩌고 하는 장한몽 한편 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에게는 억울한 대명사였다. 그래도 『거 변사들 참 잘해…』라고 칭찬이나 하셨지, 지금은 소외되어가는 토킹·머쉰인걸….

각설, 이때에 일본의 탤런트가 어떻고 미국의MC가 어떻다는 등 입문서의 지식만이 밑천인 방송연구생들이 발호하는 지금, 방송의 일관작업에 통달할 것과 모든 사물의 개념의 부자일 것이 요구되고, 또 방송을 피부로만 아니라 골수까지 체득한 아나운서들은 이 언밸런스의 풍토에 어떻게 적응해야할 것인가.

시지프스가 돌을 메고 올라가 밑으로 굴리고, 다시 메고 올라가는 그 산정의 비극적 써큐레이션처럼 시간이라는 무한대의 구멍이나 메우는, 매몰 작업의 삐에로로 전락할 것인가 아나운서도 떳떳이 생존할 것인가는 사슴이 그 두상에 녹용을 키우듯 우리들 내부에 성장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는 데 달려 있다.

사람들이 원숭이 울을 둘러쌓고 희희낙락할 때, 우리는 풀을 뜯지 않겠는가?

동물원에 가 보라. 인기는 모두 원숭이의 것인 것이다.

다시 각설. 이때에, 우리를 아나라 부르지 말라 눌언이 아니거던 말이다.

그래도 부른다면 할 수 없지,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으니까.


                                                                                                                       (1965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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