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야생의 꽃을 울안에 심고

최철미 2014. 2. 8. 10:15

야생의 꽃을 울안에 심고

열대수를 온대지방에 옮겨 살게 한 뒤, 다시 원산지에 이식하면 시들고 만다는, 식물의 생리를, 인간의 애정에 대입한 것이 앙드레·모로아의 걸작소설「쿠리마」, 이 사랑의 풍토기는 극을 달리하는 두 성격의 대위 안에 갇힌 한 남자가 어떻게 분열하는가 하는 과정을 실험하고 있다.
매혹적인 오디일,
상식적인 이자벨,
이 사이를 일 왕복한 진자운동 끝에 아무도 자기의 분신이 아니었음을 발견하는 남자의 비극.
앙드레·모로아 이전의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성격이 비극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앙드레·모로아의 실험의 바탕은 도태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무성격시대.
기계문명은 인간의 사유와 감정을 균일화하고, 의욕과 행동을 정일화 하고 있다.
이성은 하나의 레디 메이드, 스탕달이 그의「연애론」에서 펴 보인 결정 작용 같은 것은 이제 의미를 상실했고, 누가 나에게 알맞는가 골라잡는 근사치에의 추구가 있을 뿐이다.
의복이 없었던 시대에는 연애가 없었다는 아나톨·프랑스의「펭깅도 기행」은 수정되어 마땅하다.
의복이 있는 시대에도 연애는 없으니까….
현대의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여편네로 삼아 맞벌이에 나섰다.
사랑의 가치가 어떻게 전도되었는가를 엔사이클로피디어 브리타니카는 잘 입증하고 있다.
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백과사전의 50년 전 판과 근년의 신판을 대조래 보라.
반세기 전에는 원자라는 말의 해석이 겨우 두 줄, 사랑이라는 말은 50 여 줄이었는데, 최근에는 정반대로 사랑은 일곱 줄에 그치고, 원자의 해설은 반 페이지를 덮고 있다.
사랑이 일곱 줄로 정의되는 핵시대의 풍토에서는 연애가 소멸되고, 불신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심장이 있던 자리에 계산기가 돋아나는 세대에 나는 태어났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신은 어찌하여 여덟 개의 발을 가진 짐승을 둘로 갈라놓았는가?
여섯 살부터 베터 하아프 탐색을 시작했다.
너무 일렀었다.
그 후 나의 탐색전은 때로는 유희였다.
때로는 욕망의 발산이었다.
때로는 고독에의 저항이었다.
마침내 아리스토파네스는 거짓말쟁이고 나의 분신은 무지개 저편에 있는 것이라는 만각과 함께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눈앞에 야생의 꽃이 있었다.
야생의 꽃을 울안에 심는다는 것, 결혼을 인간의 완성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무거운 십자가로 비쳤을 것이다.
목사는 잃어진 한 마리의 양을 찾으라고 했다.
그것은 위대한 환각.
그러나 나는 결혼을 신념으로 성립시켰다.
결혼은 해도 불행, 안 해도 불행이라는 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체험한 사람에게 있어 결혼의 가치관은 달라진다.
손을 잡고 함께 간다는 것, 부부는 길동무 이상의 것도 아니며 길동무 이하의 것도 아닌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 기준에서 그러한 철리를 깨쳤다는 것 밖에는 어떠한 공통인수도 갖지 않은 우리들이었다.
자기 이외에는 모두 적이라고 여기는 상처투성이의 여자였으니까….
그러나 그 공통인수만으로, 오직 하나의 우군이 될 수 있다는 여자의 단정과 오디일도, 이자벨도, 기성품도 아니며, 짓밟혀도 눈 비벼 다시 피는 야생의 꽃이라는 나의 발견은, 우리들을 조건 없는 합의에 이르게 했다.
결혼식.
사회적동물이기에 밟아야 하는 그 공고의 절차까지 기성의 모랄은 우리를 얼마나 학대했던가?
폭행, 위계, 훼예….
온갖 시련을 신념으로 극복하고, 우리들은 부부로서 생존한다.
그리고 생존을 생활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그 노력은 엥겔계수를 낮추려는 데보다 그것에 초연하려는 데 비중을 두는….
그리하여 나는 일상적으로 로렌스·굴드를 인용하고 교도한다.
화폐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생활영역이 있으며, 그것을 더욱 광범하게 향유하는데 지표를 두자고….
하나의 동류의식에서 악수하고 출발한 우리들에게도 그 지표가 아직은 멀다.
그러나 끝없이 줄기찬 내구력으로 나의 작업은 추진된다.
울 밖과 울안은 태양의 조사시간이 다를 것,
그 산소동화작용을 지켜보며 적응도를 측정해 가는 면밀한 배려 속에 나의 여자는 자란다.
이것이 나의 결혼생활.
열대의 수목이 온대에서 자라듯,
야생의 꽃은 나의 울안에서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1964년 여상)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결혼 직후에 쓴 글......  하지만 슬프게도, 아버지의 이런 노력은,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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