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행복의 문지기

최철미 2014. 2. 8. 10:35

행복의 문지기

찬송가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교회는 문을 연다.

그래서「왼손에 코오란 오른 손에 칼」처럼, 한 손에 성가집, 또 한 손에 지휘봉을 든 입 큰 신도가 시범을 한다.

이, 창가지도라는 계몽기의 유습은 퇴화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노루꼬리처럼 남아 있다.

그런데 종교보다 훨씬 일반화된 의식에 있어 퇴화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른 바 결혼식의 사회.

엄숙한 채플의 공기를 팔뚝질로 사분오열하는 콘덕터와 함께 무용의 장물이다.

석전의 집사처럼 일일이 순서를 아뢰는 것이며 주례의 영역을 무단 침범하는 그 요설은 맑게 갠 날의 우산 같은 것이 아닐까?

아니, 한국의 주례님들은 위엄을 갖추느라 시종을 거느리는 것일까?

이와 같은 편견에서 결혼식의 사회를 거부해 왔다.

따라서 대중포용 기술을 닦는 MC훈련에 일조가 된다든가, 자연스럽게 팬을 증가시킨다든가 또는 인간관계를 확대할 수 있다든가 하는 등등의 부차적 이익과도 경계를 그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편견과 고고를 오래 가지 못하게 한, 두 결혼이 있다.

지금은 패리·메이슨업을 벌인 H검사가 현직에 있을 때, 소환장 보내던 솜씨로 띄운 한 장의 엽서, 거기엔 육하원칙 가운데「언제」「어디」라는 2W만 밝혀 놓고, 나와 달라는 사연 뿐 이었다.

비오는 일요일의 오전 열한시, 지정된 장소에 닿아서야 그것이 사고무친의 하녀를 한 외로운 병졸과 맺어주는 혼례라는 것과 청첩장인의 막역지우 몇 사람에게만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객은 겨우 여덟 사람, 이 리허설 풍경 같은 결혼식을 텅 빈 의자들과 혼탁해지지 않은 공기가 축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회자는 꼭 있어야하고 그것은 물론 아나운서 차지라는 것이었다.

파계의 순간은 어쩔 수 없이 다가 왔고 나는 체념했다.

정말 타의로 등을 밀려 마이크와 마주 선 나의 가슴은 그러나 점점 뜨거워져 왔다.

개구일성, 화려한 결혼식이 행복한 결혼의 전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안위와 격려의 낱말들이 잘도 이어져 나왔다.

이 준비 없는 스피취에 신랑신부는 더욱 고개를 떨구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자가도취 비슷한 감동 속에 식을 진행한 나는 에피로그에 신상발언을 덧붙였다.

『두 분 앞에 열린 행복의 문에 문지기가 되었던 기쁨을 저는 오래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첫 방송을 마친 신인의 열도 같은 것으로 닳아 오른 얼굴을, 바깥바람에 식히면서 그것은 파계가 아니라 파겁이었구나 하는 만각을 씹었다.

경칩 날 입이 떼어진 개구리 꼴이 된 나는, 노래하는 C양의 결혼식 사회도 거절할 수 없었다.

호텔의 콘서트·룸

화려한 식전이었다.

직면하는 상황에 자기 자신을 적응시키고 다른 사람도 거기 조화시켜야 한다는 평소의 훈련대로 우선,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강의부터 시작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 한다」는 쇼펜하워 영감이 지하에서 얼마나 노했을까? 신랑의 단독행진에 이어 새악씨의 아장 아장 걸음마와 맞절 등이 끝나고 새 가정이 하객들에게 첫 절을 드리는 순서에 이르러, 나는 토픽감을 하나 만들자고 긴급 동의했다.

『신부는 샹송의 여왕입니다. 오늘 기쁨의 정상에 선 그녀의 노래를 듣지 않으시렵니까?』

『옳소!』소리는 없었지만 우렁찬 박수가 동의에 재청했다.

타의로 등을 멀린 나의 첫 번 파계의 경우처럼 마이크 앞에선 C양은, 먼저 눈짓으로 낭군의 동의를 얻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만장은 고요.

바이브라폰의 영롱한 전주가 노래를 유도했다.

웨딩드레스의 레이스 자락이 하늘하늘 떨리고 신부는 장미꽃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멘델스죤의 「노래의 날개위에」오르락내리락, 내리락오르락…그토록 서툰, 그리고 그토록 행복에 떠는 C양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기브·앤·테이크는 원래 우리의 미풍, 여러분은 동방예의지 국민이라는 제의도 박수로 받아 들여졌다.

하객들 모두 입을 모아 축가를 부르자는 것이었다.

다시 풍악은 울리고 여가수K양이 지휘를 자원하고 나섰다.

「홈·스윗·홈」의 대합창이 호텔을 뒤흔들고 종업원들은 식장 언저리로 몰려들었다.

파격적인,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날 K양의 지휘봉은 나의 편견을 부수고, 그 합창 속에 나의 고고는 스러졌다.

그리하여 웬만하면 행복의 문지기를 사절하지 않는다.

목하 성업중.

                                                                                                                      (1966년 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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