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장님을 위한 예술

최철미 2014. 2. 8. 10:49

장님을 위한 예술

=예술가와 그 FANATIC

《카사부랑카》의 「엔드·마아크」가 떠오를 때처럼 비가 왔다.

이백의 시를 빌리면 삼삼여은죽…

물방울의 잔상을 응시하며 그 연탄음에 매혹된 음악 감상시간의 아나운서는, 그의 인생의 여권이 정말 함초롬히 젖어옴을 느꼈다.

사념을 정지하라는 붉은 신호등인양 갑자기 on AIR 라이트.

『쇼팡의 빗방울 왈츠였습니다…. 지금 창밖에 내리는 비, 저 비를 내리게 하는 먹장구름 위에는 항상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철인의 명귀. 그런데 이 평범한 진리의 ADLIB는 곧 반응을 나타냈다.

이튿날, 분홍빛 봉함엽서가 날아든 것이다.

그 때는 봉함엽서가 유행했다.

『전, 절망의 깊은 못 속에 빠져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 『그런데…』이후는 물론 대오각성기.

《마음의 샘터》가「베스트·셀러」가 될 소지는 그 때부터 닦아졌던 것이다

이 갱생녀의 음신은 거기서 스톱. (어디선가 잘 먹고 잘 살겠지…)

근시안 너머로 구름을 투시했던 이 아나운서의 이니셜은 N.

우기가 지난 다음 N씨는 한 장의 연서를 받았다.

크레졸 냄새가 짙게 풍긴 그 하도롱 봉투의 발신자는 여의사가 아니면 간호원 이었다.

이 백의 족, 문진에는 서툴렀던지 무슨 아포로 예찬 같은 것을 먹 글씨로 휘지 하였으되,

『당신의 키는 표준을 조금 넘을 것 같고 짙은 눈썹, 이지적인 눈, 정열적인 입술…ETC ETC』

그리고 다음과 같은 PS를 잊지 않았다.

『파고다 공원에서 만나 뵈었으면 좋겠어요』N씨는 나아시서스.

이발소 거울 앞에서 구십 분을 보내고, 지정된 시간에 석탑 둘레를 어슬렁거렸다.

이윽고 나타난 아프로디테, 빨간 하이힐이 신표였다.

외교관과 유령은 미소로서 상대방을 협박한다고 했던가?

그런데 미소 커녕은「블랙커피」같은 고소를 띄우면서,

『저어 제가 N인데요, 혹시…』하고 일보전진.

그런데 목표는 측면으로 급선회, 칼맨의 눈꼬리 같은 것으로 흘기면서

『대리로 오셨으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씀 하세요』그리고 배앝듯이,

『누가 대리를 내보내라고 했담!』

N씨는 비로소 상황을 판단했다. 「토마토」처럼 붉어진 얼굴, 케첩처럼 일그러진 체면. 그러나 임기응변

『네, N씨는 몸이 불편하셔서… 뭐 전할 말씀이라도…』하고 메신저도 추락해버렸다.

그러나『말씀이라도…』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또각또각 멀어져 가는「하이·힐」소리….

석탑에 돌진해서 옥쇄하고 싶어진 N씨는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위에 항상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그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 같은 하늘을.


이「아나운서」사의 상고설화이후에도, 우편이라는 통신수단은 FANATIC이 즐겨 잡는 미로의 실 가닥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복잡하고 다기할 뿐만 아니라「푸로이드」의 신세를 져봄직 하다.

『저는 꿈에 계시를 받았어요.「모세」에게 십계를 명령하신 그 지엄한 목소리가 저에게 꼭 M선생님과 혼인을 하라고요, 이 하늘의 계시를 어떻게 어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R·S·V·P 전 가족이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크지 못한 M씨는 물론 오들오들.

『나는 무신론자』라는 간곡한 회답을 보냈으나 독촉장은 멎지 않았다.
(무슨 세무서라고…)

이 무녀의 집념과 정열은 서서히 F·O되었다. 다행히, 극히 다행히.

그런데 그 무녀의 신은 번의를 한 것일까?

이번에는 K씨를「타겟」으로 화살을 쏘아댔다.

K씨는 작은 고추, 맵기로 이름난 사람. 나도 계시를 받을 때 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기다림에 지쳐서 가슴에 멍이 든 이〈동백 무녀〉는 어느 길일을 복하여 상경, 아주 혼수까지 머리에 이고 남산 연주소 RECEPTION에 출현. (천만에, 거짓말이 아니다)

K씨와 혼인하려 왔다는 노란 저고리 보통 치마의 저돌녀를 돌려보내느라 그 겨울에 수위들은 땀을 흘렸다.


거울은 여자를 보고 왜『당신은 밉게 생겼다』고 한 적이 없을까?

정감 듬뿍한 목소리의 G씨는 사진동봉의 등기우편을 받고 감격했다. 암실에서 무수정통과 된 팔등신을 기대하며 개봉.

『각설, 이때에 눈은 왕방울 같고 코는 질병 같고…』운운의 장화홍련전의 계모 역을, 그 미녀는 사절 인화지 위에서 열연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번 미스·코리아에 응모하려는데 당신의 의견여하?』라는 앙케이트까지 첨부된 그 예술사진을 G씨는 여난을 막는 부적으로 삼는다 했다.

「뷔너스」는 다시 제이신을 보내왔다.

(체신부의 세입결함은 이래서 보전되는가?)

『보내드린 사진 받으셨는지요?』

그리고는 병후가 돼서 제 모습이 아니라는 변명을 깍듯이.

변명이란 거짓말을 방위하는 수단이라 했던가?

『전 무남독녀에요. 제 오빠다 돼 주시지 않겠어요? 승낙하신다면 G선생님 맡으신 공개방송 첫 머리에서 기침을 두 번 해주세요. 네?』
(누구를 해소병 환자로 아나…?)

만약에라도 기침이 날까봐「아드레날린」을 복용하고 무대에 섰다면 너무 잔인할까?


장님을 위한 예술에 종지부가 찍히기 까지는, 예술가와 FANATIC의 이「테니스」경기 같은 서어브와「뤠시브」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지하의「발코니」는 이런 줄도 모르겠지?




'아나운서, 최세훈 > 아버지의 수필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보다 햇빛  (0) 2014.02.08
올림픽·텔레비전 별견  (0) 2014.02.08
행복의 문지기  (0) 2014.02.08
ABC… 편지를 띄우기도 하고  (0) 2014.02.08
야생의 꽃을 울안에 심고  (0) 201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