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올림픽·텔레비전 별견

최철미 2014. 2. 8. 11:13

올림픽·텔레비전 별견



물거품 속에서 태어났다는 비너스 같은 팔등신의 미녀가 도약대에 선다.

호흡을 조정한 다음 비판을 탕 굴러 공중으로 솟구치면 회전하는 그 곡선, 낙하하는 그 직선의 아름다움.

물속에 말려드는 순간 만개하는 하얀 거품의 꽃, 이윽고 수면위로 떠오르는 인어, 박수와 환성 속에 수영복의 미녀는 젖은 머리칼을 훔친다.

이것은 여자부 스프링·다이빙의 점묘.

그런데 수면이 가라앉기도 전에 싸인·보드에는 심판8명의 채점결과가 전광으로 나타난다.

5.56.06.55.05.56.05.56,0…다음에 총점, 그다음에는 평균점, 이렇게 선수의 득점게시가 한 찰나에 이루어진다.

흥미 있는 것은 전광게시판에서 불꽃 튀는 미소의 냉전. 다이버가 미국인이면 미6.5 소5.5 소련인이면 미5.5 소6.5 공정해야할 심판.... 페이퍼에도 사상의 간격을 넓힌다.

마침내 결선. 독일의 요정, 엥겔·크래머의 우승이 확정되자, 공식발표도 있기 전, 어느 틈에 찍어 두었는지 고속도촬영 V.T.R이 텔레비전에 말리며 우승자의 미기가 천천히 분석된다.

경기장마다 분점 된 성화, 평화의 횃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시상식.

미와 힘과 기를 다하는 NHK마이크와 카메라가 텔레비전 센터로 옮겨지면 미소하는 호스트, 호스트 뒤에는 마치 텔레비전 전시회, 십 여대의 세트가 모두 각종경기장과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이곳은 심장부, 대소동맥과의 혈액 순환도를 펼쳐놓는 것 같은 중앙선에서 오늘의 호스트·아나운서는 각 지선을 가리키며 전적개요를 해설한 다음「자 그럼 조정경기를 보실까요?」 센터와 카메라가 조정경기의 세트에 다가가서 클로즈·업 되면 바로 바다의 장면. 망원 카메라가 자국선수의 프로필을 잡은 다음 출발신호.

잔파를 하얗게 끌면서 앞을 다투는 보오트·레이스 한편, 스타트와 함께 시간의 슈퍼·임포즈가 화면에 점멸하며 누적된다.

마치 제재소의 기계톱 밑에 수북이 쌓여가는 톱밥처럼….
슈퍼·임포즈와 심판기록은 불과 1, 2초의 차, 결승점을 지나면 카메라는 앞선 선수들의 피로속의 영광과 뒤진 선수들의 헐떡이는 숨결을 대조하며 핥아간다.            

서상은 올림픽 제2일 오전 NHK총합 텔레비전의 프레임들을 별견한 것이거니와 오륜개막전 동경도전경을 헬리콥터에서 조감하는 것으로 시작한 텔레비전 보도는 과학의 올림픽을 뒷받침하는 메커니즘의 정화하였다.

하늘에는 신콤위성, 땅위에서는 78나라 840명의 기자와 139명의 카메라맨들이 사상최대의 보도전을 전개하는 가운데, 이니시어티브를 쥔 주최국의 카메라·워크가 너무 편벽되어 자국의 PR에만 급급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자주의식의 지나친 발로라고 너그러히 받아들일 가슴의 용량을 넓히면 그뿐 오후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영상을 본다.

라디오에는 비디오가 없을 뿐 이 장님을 위한 예술도 텔레비전과 똑같은 작업을 줄기차게 수행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호스트·아나운서의 해설가운데「이 경기는 칼라로 즐기시겠습니다. 」라는 천연색 텔레비전의 예고.

경탄의 한숨 속에 패배의 슬픔 같은 것이 오버랩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들의 낙후는 메커니즘에서 뿐만 아니라 아나운서 기술면에서도 현격했기 때문에 패배감이 더욱 짙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중계캐스터에게는 명확, 침착 ,공정한 방송태도, 경기의 추이에 민감한 형안과 룰에 관한 오소리티. 그리고 경기용어의 국어화 노력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었다.

농구의 경우 「볼을 풀로어에 바운드시키다가 사이드로 패스…」식의 조사만의 국어사용이 아니고 자유투의 슛 골인을 「노렸습니다」「됐습니다」로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어느 동구국가와의 바스켓·볼 예선에서 패색이 짙자, 그 나라에서는 국민의 체력증강이 국시가 되어 있다는 얘기를 해설자와 주고받는 것으로 자국선수의 체력미급을 가볍게 시사하고 있었다.

그 나라의 국시를 게임과 결부하지 않고 그냥 시사하는 양식, 이 양식은 국제경기에서승패에 초연하지 못하고 지나친 주관을 개입할 뿐 아니라 우국정열까지 발산하는 우리나라 스포츠캐스터의 태도보다는 훨씬 앞선 것이었다.

아나운서의 현업관리에 있어서 철저한 분업제, 취업량의 기준화, 과학적인 훈련 등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라는 계산과 함께 우리들의 낙후성을 인식하고 전진에의 각성을 촉구 받았다는 것만이 흑자로 남는다는 또 하나의 서글픈 계산을 하면서 별견을 마쳤으나, 올림픽·텔레비전은 확실히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넓은 하늘이었다.
                                                                                                       (MBC 사보 1964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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