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21

최철미 2014. 6. 15. 12:55

(1.21)

방학이 시작한지도 꼭 한 달째. 이젠 그 무수한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고, 잔뜩 밀린 숙제만이 먼지에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 달 동안 도대체 무얼 했는지…. 정말 비탄에 잠길 수밖에 없다. 계획할 땐 아르바이트니 뭐니 왕창 하려 했는데…. 막상 하려하니 잘 되는 일이 없다. 오빤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 뿐 이고. 하지만 어떻게 매일 공부만 하며 책상 앞에 앉아있담. 대학에 합격한 언니가 참 부럽다. 이젠“서울대”학생이라 뻐기고 다니고…. 난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언니 친구 놀부오빠는 정치학과에 합격했다. 똥개오빠는 철학과에. 그는…. 생각하기도 싫다. 부산 대학교 불합격이란다. 광표 오빤 고고미술사학과. 공 오빠는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모두들 잘 됐는데 Y만. 전화가 몇 번 왔는데 난 매번 언니만 바꿔주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떨어진 사람에게 무슨 말로 격려를 해야 할지 …. 아니, 어쩜 자기중심적인 도피일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나도 내 자신을 모르겠다. 한동안 잠재의식 속에 파묻혀 있던 그를 또 생각할게 뭐람. 후-. 사춘기라서 그런가? 이제 생각해보면 그는 잘난 체만 한 것 같다. 나쁜 사람 같으니라구. 흥. 보기 좋게 떨어졌다. 민식이 오빤 철학과에라도 갔지. 자긴 뭐야! 언제나 개똥철학만 찾더니만. 쯧쯧. 내가 꼭 이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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