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11

최철미 2014. 6. 15. 13:32

(1.11)
거룩한 고요와 감히 범할 수 없는 적막이 백설에 덮힌 대지를 감싸고 있는 밤. 열어젖힌 창문으로 차가운 냉기가 방안에 들어오려고 한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낙엽들은 밤이 주는 싸늘함과 겨울이 주는 소외감으로 파르르 떨고 있는 것만 같다. 외로움의 공포와 물밀 듯이 엄습하는 허무함. 그리고 고독…. 후, 몸이 나른해진다. 하루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까닭일까?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스트레스”라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오락물들을 창조했다. 술, 담배, 춤, 전자오락…. 간추려 요약하면 “마약 같은”것들. 끊을 라야 끊을 수 없는…. 영화도 그들 중에 한 통속이 아닐까? 결국, 인간은 자신들이 창조해낸 지나칠 수 없는 현실 앞에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다. 너무나 무기력하지. 그러나 우리네 인간들은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에고이스트….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아픈 숙명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끄러운 Pop-song으로 방안을 가득히 채워놓고서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 쓸쓸함이 깃든다. 싸늘한 아스팔트 위에 우뚝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점차 희미해져만 간다. 자동차의 클랙션 소리가 밤의 정적을 찢어버린 지금,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이 방안에 기어들어오려고 해서 라디오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시간이 11시21분을 over하고 있다. 나. 나는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걸까? 세상의 빛과 같이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나. 이젠 내가 의지하던, 내가 굳게 믿던 모든 것들이…. 내가 설 땅을 잃은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 이혼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발견한 때 살 희망을 잃어버린 나. 후-. 싫다. 나의 추악함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아. 누가 들으면 “히스테릭한 잠꼬대”라고 할 거야. 그렇지 않니, 윤경아? 이젠 그만 자러가야 할까보다.




'가족들의 글모음 > 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4.1.9  (0) 2014.06.15
1984.1.10  (0) 2014.06.15
1984.1.12 - 시간의 노예 (시)  (0) 2014.06.15
1984.1.13  (0) 2014.06.15
1984.1.13 - 내 삶의 자화상 (시)  (0)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