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7

최철미 2014. 6. 15. 13:41

1.7.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죽임을 당해도 살아나겠다.”고 생각해오던 나였습니다. 자살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을 인간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인간의 확신이란 것은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요.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쁨 바로 옆에는 슬픔이 있고, 고통 바로 옆에는 환희가 있듯이 삶 바로 옆에는 죽음이 존재한답니다.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즉 죽음에 충실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죽음이란 허무한 존재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이대로 정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답니다. 또한, “나는 무엇을 위해 이제껏 투쟁해 왔는가?” 하는 허무적인 감정으로 슬픔을 금치 못했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은 그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게 아닙니까. 아빠, 엄마, 언니, 오빠 그리고, 새엄마와 그리운 동생. 언젠가 속세를 벗어난 영원한 곳에서 다시 만나겠죠. 모두들 비참한 운명을 타고난 나로 인해 가련한 신세들이 되셨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런 걸 세상 사람들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나요? 이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는 저의 슬픔을 사랑해주십시오. 제가 존경하던 시인 윤동주 선생님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먹물로 도배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금 별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 선생님의 짧은 생애가 애처로워 지는군요. 마지막 부탁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해주십시오. 사악함, 더러움, 혐오감….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질병들입니다. 그러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세요. 그들은 우리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것들입니다. 날로 때가 묻어가는 세상입니다.

'가족들의 글모음 > 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4.1.5. - 판타지   (0) 2014.06.15
1984.1.6.  (0) 2014.06.15
1984.1.8  (0) 2014.06.15
1984.1.9  (0) 2014.06.15
1984.1.10  (0)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