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5. - 판타지

최철미 2014. 6. 15. 13:44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할 때면 잠자리에 들 무렵이나, 혼자 길거리를 걸을 때, 특히 일기를 쓸 때에는 정말 달콤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약 이렇게 초라한 최 윤경이 아니고, 영국 귀족의 혈통이라면.

이름은 마리아. 나이는 15살 그리고 모델 겸 영화배우. 세계 각지의 신문에 이렇게 기사가 실리겠지.
「지상 최대의 미녀 마리아·그레이트야아머드. 브룩 쉴즈도 그녀 앞에선 머리를 수그릴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고, 몸매 또한 날씬한 15세의 소녀. 짧은 머리가 그녀의 청순함을 돋보여 준다. 초록으로 빛나는 맑은 눈동자와 우뚝 선 콧날은 그녀의 귀족적은 기품을 존재케 한다. 이미 한 편의 영화로 전 세계를 휘어잡은 마리아는 초콜릿을 매우 좋아한다고. 또한, 영국 청소년들의 인기인 베스트10에서 당당 베스트 1위를 석권. 가창력도 바브라·스트라이샌드 못지않고, 스키, 테니스, 수영, 골프 등 어느 하나 못 하는 게 없는 행동파 아가씨.」 아, 생각만 해도 황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쩜 남자 같은 아이가 이런 상상을 하다니.”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그래 꿈 깨자. 나에게 만족해야지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흐흑 난 어째서 꼭 이런 형태의 인간일 수밖에 없었는지. 더구나 비참한 운명을 타고 난…. 아버지, 어머니에게 규명하고 싶다. 4대 성인에게도 따져보고 싶다. 나같이 못난 애를 왜 존재하게 했는가를. 못생기고 키도 작고, 뚱뚱하고, 공부도 못하고, 운동신경도 둔하고, 이기적이고, 낭비할 줄만 알고, 오락만 좋아하고, 세상을 규탄하는….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의 단점 투성이의 인간을 하느님께선 왜 창조 하셨는지요. 미쳤구랴! 나 같은 몹쓸 인간을 내려 보내시다니. 아 그러나, 이해하자. 그들과 나는 똑같을 수 없질 않니?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하던 윤동주의 생애가 가련하다. 오! 나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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