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4.

최철미 2014. 6. 15. 13:46

1.4..
3일간의 휴가도 끝나버렸다. 오늘부턴 공부하라는 아우성들. 하는 수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S. 책을 펴도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어느새, Y로 변해있다. 오, 망칙하다. 순간이더라도….
“난 오빠가 좋아. 오빠가 나의 친오빠였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오빠를 대할 때면 어딘가 어색해. 우린 할 얘기가 없어 멍하니 앉아 시간을 때운 일이 많았지 않아. 오빠와 대화를 하려면 난 우물쭈물하게 돼. 오빠의 얘기는 거의 99%가 이해불능이야. 그런데, 만약 오빠가 내 나이 또래였다면 -S-같이 우린 정신연령이 비슷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쉬울 거야. 남녀의 구별을 초월할 수도 있고, 아주 유쾌하겠지. 오빤 언제나 고차원적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없어. 애써 어휘를 구상해야 할 필요도 없고. 우린 우리만의 세계에서 통하는 순수한 말을 쓰기 때문이지.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냐면…. 난 진심으로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해. 오빤 자칭 나의 절대자라 했지? 절대적인 사람. 글쎄, 그렇다면 난 오빠에게 구속되어있는 상태가 되겠지? 더구나, 난 오빠에게 진심을 털어놓을 수가 없어. 그건 이성, 성별의 차이, 정신연령 등등. 장애물을 제거할 수 없는 그런 것들. 난 이성 때문에 고민해야하는 너저분한 관계는 청산하고 싶어. 차라리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S가 좋아. S와의 관계는〈영원한 친구〉이기 때문이야” Y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나의 절대자가 되고 싶다면 날 궁지에 몰아넣기 좋아하는 작자가 될까? 나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다면 어째서 나에게 한층 더 고뇌를 주는 걸까? 후-. 복잡하다. 좀 더 담백한, 좀 더 괴롭지 않은 그런 사랑. 수미는 요즘 재미가 좋은 모양이다. 친구와 함께 남자들을 사귀고…. 아. 방에 틀런 사랑. 수미는 요즘 재미가 좋은 모양이다. 친구와 함께 남자들을 사귀고…. 아. 방에 틀어박혀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하는 괴로움이란. 무슨 신나는 일은 없을까? 괴로움을 잊을만한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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