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3.12.31.

최철미 2014. 6. 15. 14:03

12/31

1983년의 마지막 달. 그리고 마지막 날. 마음 한 구석 어딘가 허전하고, 착잡하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한 일도 별로 없는데 365일이 내 앞에서 스쳐지나가 버렸다. 지금의 내 심정을 말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글쎄, 내가 가진 어휘로는 다 얘기할 수 없다. 저물어 가는 83년의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을 다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후-. 다가오는〈84년〉을 어떻게 맞아야 할는지, 뭔지 모르게 무섭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마지막 한 잎마저 소멸해버린 앙상한 가지의 초라함.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것 같은 무거운 잿빛하늘의 침묵. 세찬 바람에 휩싸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낙엽의 슬픔. 풍요로움을 주던 햇살도 먹구름에 가려 다시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다 마셔 버린 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빈 술잔의 고독. 여인의 가슴에 눈물로 얼룩진 상처의 고뇌. 차디찬 위선의 시선아래 거절당한 사람들의 곤욕을. 꼭 6시간 남았다. 조지 오웰의〈1984년〉. 오늘과 내일이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동쪽으로 해가 뜨고 서쪽으로 져버리고…. 그러나 1983년은〈과거〉라는 어둠속으로 묻혀버리고, 1984년은〈미래〉라는 희망과 함께 나, 아니 온 누리에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각오를 해야 될 것 같다. 고상하고 숭고한 목적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 같다. 한 잎의 낙엽도 떨어져 내리면서 우주의 가장 큰 법칙하나를 채우듯 나도 하느님이 만들어놓은 아주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한 살 더 먹게 될 텐데…. 그야말로 꿈 많은 “15살”이 된다, teen-ager의 중간이 된다. 성근도, 선화도, 종성도…. Y는 21살. 언니도 21살 푸하. 인생이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꺼져가는 모닥불”같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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