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3.12.21

최철미 2014. 6. 15. 14:23

(12/21)

50여 일간의 방학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하루하루 지겹게 손꼽아 기다렸건만 막상 방학을 시작하니, 뭔지 모르게 두렵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차고 보람 있는 방학을 보내리라” 매년 하는 다짐이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 많은 시일을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못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으~~. 치가 떨린다. 이상하다. 오늘 그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역시 행운은 내게 존재했던 걸까? 이별의 편지를 전해주려고 했었는데…. 아 하루가 연장된 것이 감사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그를 스쳐지나가지 않으면 안 될 텐데. 결국, 그도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우린 헤어져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윤경아.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속에서 넌 성장해 나가는 게 아니겠어? 스스로를 달래본다. 일시적 슬픔일 뿐이야. 나도, 그들도. 또 다른 인생관을 접하게 될 걸. 머무르고 싶다. 아. 요망사항을 적은 것일까? 갈 곳도 없이 떠나야 하는가. 반겨줄 사람 아무도 없는데. 꿈길을 가듯 나 홀로 떠나네. 머무를 곳 그 어디 있는지 몰라도 난 외롭지 않을 거야. 그가 가르쳐준 〈해밝은 웃음〉이 있기에…. 눈물이 두 뺨을 적신다. 난 그를 진정으로 절대자라고 여겨 왔는데…. 아. 아무도 날 구해주지 못하는 구나. 타인의 힘을 빌어야만 나올 수 있는 걸까? 모르겠다.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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