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언어생활의 유신을 위하여

최철미 2014. 7. 25. 11:59

언어생활의 유신을 위하여

언어학에는 이른바 개신파라는 것이 있다. 새로운 언어의 세력이 물결처럼 퍼져가는 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개신파는 원래 도로를 따라 전진하며 방언을 침식하는 것인데, 옛날에는 산을 돌고 물을 건느지 못했으나 <줄 없는 전화>인 라디오의 보급이후 개신파는 그러한 공간을 초극하게 되었다.
여기에 개신파의 원류인 방송이 언어생활의 계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당위가 성립된다.
말은 종으로 고금을 뚫고 횡으로 한 지역에 광파되어 같은 언어 생활권에서 동일의식을 심어주고 한덩어리의 사랑을 일어나게 하는 특성이 있는 반면, 소리의 진화형태로서 유동하고 변속하는 특성도 아울러 갖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표준화가 요구된다.
빼앗긴 말을 되찾은지 1/3세기가 가까와지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의 겨레말에는 적지않은 혼란이 일고 있다.
발음의 혼란, 의미의 혼란, 형태의 혼란, 거기에 물밀 듯이 밀려오는 외래어와 분별없는신조어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언어현상과 사회현상은 승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는 사회정화가 선행되거나, 또는 병행되어야겠지만 우선 언어의 혼란에 질서를 부여해야겠다는 자주의식이 끊임없이 제고되어 왔고 그러한 노력이 실제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의 혼란은 아직도 지양되지 않고 말의 잡초가 무성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기에 우리는 혁신의 깃발을 꽂고 개벽의 호미질을 시작했다.
지난 3월 문화방송에 용어심의위원회를 설정한 것은 언어생활계도에 앞장서 진정한 의미의 개신파를 발사하자는 목적에서였다.
지난 수개월 우리말 순화와 용어 통일 작업을 벌이는 심의위원회의 노력을 치하하는 바이나 소통을 향한 제일보에 지나지 않는다. 반년간의 심의 활동을 묶어 회고하는 지금, 이땅에 새로운 질서가 태동되고 새 역사가 창조되고 있다. 더우기 분단 4반세기만에 열린 남북대화에서 언어의 빙벽이 느껴지는 냉엄한 현실은 우리의 사명감을 더욱 부채칠하고 있다.
말은 사상을 번역하는 무기라고 했다. 언어생활의 유신이 겨레에게 자주 자강의 사상을 심어주고 뜨거운 동일어족 사이의 빙벽을 용해하는 뜨거운 사랑의 불길을 점화해 주리라 믿는다.
영국이 그나라의 표준어를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BBC English 에 두고 있는 것처럼, MBC 한국어가 겨레말의 표준이 되도록 끊임없이 창조하고 개발하여 우리나라 표준어로 발돋음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참다운 개신파를 발사할 수 있게 되기를 용어심의 위원회에 당부하는 바이다.

(1970 년대 당시 문화방송 이환의 사장을 위하여 쓰신 연설문 - 아버지는 문화방송 중역들의 speech writer 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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