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결혼계약서

최철미 2015. 7. 26. 08:13

결혼계약서                                                  


(시간의 여울목에서 - KBS 아나운서 수필집)

1975.12  경림출판사 발행


"만약에 말야... 이혼식이라는 걸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신랑 입장을 기다리는 지루한 코리언 타임이 역겨웠던지 한 공처가가 엉뚱한 발상을 해냈다.
"미국에는 이혼여행을 하는 풍습이 있지... 허니문 코스를 다시 더듬노라면 화해하든지, 아주 갈라서게 되든지 한대..."
아메리카 편향의 통역장교 출신이 싱거운 소오스를 쳤다.
문 있는 쪽을 응시하던 한 신입사원이 목욕탕에서 뛰어나온 알키메데스처럼 갑자기 높은 소리로 떠들었다.
"부부 입자앙... 하면 나란히 걸어 들어오지? 그런데 퇴장 순서가 되면말야, 남편은 동쪽 문으로 부인은 서쪽 문으로 갈려서(나의 길을 가련다)... 어때?"
별로 신기하지 않은 발견이지만 좌중은 피식 피식 웃었다.
여태껏 미소조차 하지 않던 나이 지긋한 선배가 드디어 참견했다.
"클라이막스는 아무래도 이 때 아냐?"하면서 목청을 가다듬고 토운을 높여, "예에물 반환...!"
옆자리서 엿듣고 있던 하객들도 따라 웃었다.
낡은 애정과 함께 산화된 금붙이 쇠붙이를 돌려주고 돌려 받는 광경은 얼마나 어색한 희극일까?
지금처럼 예식장이 번창하기 이전, 말 타고 들어와서 큰 젓가락 내던지는 초례를 기피한 적령기의 남녀들에게 예배당 다니는 유행병이 돌았다.
신식으로 화촉지전을 올리려는 이른바 "장가 예수" "시집 예수". 그러나 교회는 최소한 학습문답을 치루지 않은 사람에게는 의식을 베풀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신앙이야 급조되지 않지만 그까짓 성경 지식쯤이야 하고 도전했다가는 모조리 K.O였다.
二○세기에 걸치는 베스트 셀러인 신구약 성경은 양에 있어서나 그 내용에 있어서 실로 방대할 뿐만 아니라 미션 스쿨의 학생들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성경 읽기로 최면 할 정도로 지루한 챕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 한 자 읽지 않은 강심장의 장가 예수꾼 하나가 목사 앞에 나섰다.
"공부 많이 하셨나요?"
대답 대신 머리를 긁적대는 손가락 사이로 비듬이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럼 우선 한 가지, 저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판 다음 어떻게 되었나요?"
어떻게 되었냐고?... 더 어려운 걸 물어 보지... 팔았으면 돈을 받았을테고... 돈을 받았으면... 까지 유추하던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었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요? 잘 먹고 잘 살았지요!"
집사에게 쫓겨나온 청년은 초례청에 타고 들어갈 조랑말 한 마리를 구해야 했다. 결혼 인구의 증가와 시대의 추이에 따라 곳곳에 예식장이 서고 조랑말의 용도는 차차 줄어들었지만 초기의 절차는 왜 그리 와이드 프로였는지 모른다.
결혼식장이 축사하는 사람들의 스피치 경연대회처럼 된 축사범람 시대가 있었으니 말이다.

長廣舌(긴 광고)로 신랑 신부에게 각부 신경통을 유발했던 그 때의 풍조에 정문의 일침을 가한 간결하고 직접적이고 다이나믹한 축사가 있었다.

모두 아홉 자로 된 유례 없이 짧은 이 축사는 김승호 씨가 창제한 것으로 와전되고 있지만 원작자는 전 고려대학교의 W교수, 그는 지금 저명인사가 된 신랑신부를 다음과 같은 말로써 축복했다.

"이 연놈들아 잘 살아라!"

간소화 운동에 발맞추어 지금은 15분 내외로 끝마치는 것이 일반화 되었지만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데, 인간들은 끊임없이 지혜를 기울였고 그 기발한 형식은 이 땅에서도 즐겨 실험되었다.

비행기 속에서의 공중결혼, 거기서 떨어지는 낙하산 결혼, 산꼭대기에 기어오르는 산상결혼, 잠수구를 등에 걸머진 수중결혼 등이 직수입되고, 소화 33년 3월 3일에 처음 거행된 일본의 TV 결혼식도 1962년 3월 3일 박진현 아나운서가 이어 받았다.

다만 육상 선수끼리 100 미터 경주를 스타트해서 골인하는 일본의 10초 결혼식만은 답습되지 않고 있는데, 모든 기발한 형식 가운데서도 많이 모방되고 있는 것은 결혼식을 아예 생략해 버리고 살림을 차리는 자유로운 동서가 아닐까?

지난날의 일반적인 결혼의식이 좀 더 간소화되고 상업화되지 않았다면「가정의례준칙」이라는 타율적 규제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표준의례」에는 아직도 간소화의 여지가 많다.

첫째「신랑 입장」은「신랑대기」로 바뀌어야 한다.

소아마비 앓던 사람, 보행 연습하는 것처럼 중인환시리에 신랑이 어기적거리고 들어가 서 있으면, 돈 많은 늙은 영감이 젊은 색시 얻고 득의양양 하는 것 같은 보호자의 에스코트, 여자를 남자에게 인계한다는 서양식과, 동양식의 상현례는 참으로 어색한 부조화이다. 그리고 너무나 새삼스럽지 않은가. 인계인수, 맞절 이전에 요즘 젊은이는 더 귀중한 것을 수수하고 식장에 선다.

주례의「신랑 대기」란 구령에 따라 머물러 있다가 신부와 팔짱을 끼고 베터하프끼리 나란히 들어오는 게 이치에 맞다.

이어서 예물 교환은 돌아서서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의 하객들에게 등을 돌리고 주례 앞에서 밀수품 바꾸듯이 우물거리지 말고, 운동선수 페난트 교환하듯 시야를 넓혀 준다면 주례는 어깨 너머로도 충분히 넘겨다 볼 것이다.

「성혼 선언문」「고천문 낭독」을 폐지하고 민법상의 구속력이 있는「결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어떨까?

주례는 당연히 보증인이 되어 도의적인 책임은 물론 법적인 책임까지 질 테니 의식은 더욱 엄숙해질 것이고, 일단 3천 원 씩 받는 카이젤 수염의 주례들이 폐업을 하게 될 것이다.

주례가 계약서를 낭독하고 갑과 을이 서명 날인을 끝내면 새 가정의 가장이 된 신랑은 돌아서서 하객들에게 한 마디 쯤 감사해도 된다. 그래야만 가족대표의, "공사 다망하신 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성황을 이뤄주시니..."를 우리들은 듣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이 엉뚱한 시안에도 더 간소화할 여지가 있을는지 모른다.

더욱 이상적인 것은 모든 의식을 아예 생략해 버려도 좋은 유토피아의 건설일지도 모른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고 말한 쇼펜하우어를 믿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축복 있으라. 




(아버지의 선배 아나운서 되시는 최계환 선생님께서 엮으신 수필집에 실린 아버지의 글,  지난 달에 한국에 나갔을 때, 최계환 선생님께서 직접 복사해서 갖다 주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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