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테로 독주와 머리 빠진 삼손 [막뒤의 삐에로 (下) ]

최철미 2015. 7. 4. 15:45

□ 테로 독주와 머리 빠진 삼손

지각 45분의 최고기록 보유자인 임택근 씨, 그의 데뷔는 화려했지만 약간의 공포를 수반했다.
첫 방송의 감격적 스타팅을 가족과 친지에게 알리고 고등고시 보는 사람 법조문 따로 외듯 아나운스 멘트를 줄줄이 암송했다.
전봉초 씨의 첼로독주와 합창.
늘어선 코오랄의 눈동자와 육중한 현악기의 황갈색 동체가 우선 그를 압도했다.
우주조종사가 대기권에 돌입하는 것 같은 그 첫 방송의 중력…
임태근 씨는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전봉초 씨의 테로 독주를 보내드립니다.』
테로 독주? 비록 ㅊ과 ㅌ의 차이지만「첼로」와「테로」는 천사와 악마, 그런데 때는 저녁 어스름이니「테로」란 말만 들어도 떨렸다.
『백주의 테로는「테로」가 아니다.』는 시대 아니었는가.
테로리즘이 백범선생을 빼앗아 갔을 때 관영방송은 권총 차고 다니던 세도국장의 뱃심으로 장례식 중계를 밀고 나갔다.
장의행렬이「발 구르며 우는 소리」「아우성치며 우는 소리」를 헤치고 영결식장에 이른 것은 예정보다 두어 시간 뒤, 국민장이라기 보다는 국상이었던 그 끝없는 호곡 속에서도 전인국 아나운서는 청취자를 먼저 의식했다.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드리어 고 김 구 선생의 영구차, 이곳 영결식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암살의 배후가 투명했고 슬픔으로 이성이 흐려진 그 때의 정황에서『오랫동안 기다리셨다.』는 개구일성은 분노를 유발했다.
『뭘 기다려!』
『김 구 선생 돌아가시길 학수고대 했단 말이야?』
라디오 앞의 성난 시민들이 아나운서의 냉철을 항의할 때 조객들은 장지까지의 길을 메웠다.
경전 2층에서 연도의 조상광경을 중계하던 홍양보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효창공원에도 아나운서 한 사람이 배치되었다.
하관식 담당에 위진록 아나운서, 문학청년이던 그의 묘사력, 성우 출신인 그의 아티큐레이션은 유택으로 들어가는 고인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쳐줄 것이었다.
그러나 운구가 느렸다.
일몰 후 8시 반에야「우리들의 지도자」는 땅에 묻혔다.
예정원고를 손에 든 위진록 씨는 언어를 상실해 버린 듯 했다. 그 때 회중전등이 있었나, 촛불이 있었나, 효창동 산마루터기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민족의 암담한 미래를 상징하듯 짙게 짙게 깔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빛 없는 곳에서의 아나운서란 머리 빠진 삼손이나 다름없었다.
5.14단전 이후, 방송국의 특선도 차이나·타운처럼 깜박거렸다.
필라멘트를 붉게 닳리면서 실내 전등이 갑자기 꺼지자 공지사항을 전하던 신인은 창밖 엔지니어에게 고함을 질렀다.
『어이 불 나갔어!』
어둠속에 홀로 남겨지면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인가.
그런데 『불 나갔다!』라는 소리도 나갔다. 정전이 되는 순간 돌아가는 전지식 발전기가 마이크로폰만은 살려놓았기 때문이다.
화불단행이라고 했던가?
똑같은 상황에 놓여 진 전인국 아나운서는 GI가 퍼뜨린 유행어를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갓 뎀잇(God damn it)뭐 이래!』
하느님 보다 먼저, 사람들의 질책이 그를 넉·아웃 시켰겠지만 당시의 청취율은 우리 국민소득처럼 매우 낮았다.
전기사정이 호전되면서 르뽀르따쥬도 빈번해졌다.
몹시 가물었던 해, 서울 근교의 논에 나간 김순철 아나운서는,
『비가 안와 걱정입니다. 금년 농산 틀렸외다.』하고 침을 싹 발라 장수연을 마는 농부에게
『네 감사합니다.』로 인터뷰를 맺었다.
『뭐? 감사해요? 당신은 한발귀가 보낸 사신이오?』라고는 안했지만 뚫어져라 쏘아 보는 농부의 눈에는 소박한 노여움이 어려 있었다.
한발에는 일기예보도 조심스러웠다.
『날씨가 악화 되겠습니다』라는 관상대 예보를 무수정 통과시켰다고, 감정이 악화된 방송평론가는 꾸지람을 했다. 비오는 날의「라디오 체조」는 왜 비평대상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