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악치의 미학 [막뒤의 삐에로 (下) ]

최철미 2015. 7. 4. 15:48

□ 악치의 미학

「예악사어서수」까지 멀리 갈 것 없이 근착 외전을 보면 바나나도 음악을 들으면 성장이 빠르고 열매가 크다고 하는데 방송국에는 의외에 악치들이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작곡」이「챠이코프스키 작키」로 미끄러져 나간 것은 운수업은 하고 싶은데 부속품 살 돈이 없었던 양대석 씨의 집념이 작키처럼 들어 올린 때문이었다고 웃을 수 있다.
그러나『고요히 깊어가는 이 밤, 여러분을 꿈길로 초대하는 음악의 샘…오늘은 베토벤 작곡인 바이올린 소나타 제 8번 제 1악장 그라베 알레그로 디 몰토에 콘 브리오, 제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제 3악장 론도 알레그로를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하고 나서 『여기 지휘에는 모데라토 씨 입니다』라고 악상기호 Moderato에 지휘봉을 들려준 착란이나, 어린이 시간의 합창을 소개하며『반주에 앙상불 씨』라고 했던 도맷금에는 눈물이 나온다.
『이 시간에는 이성균 씨의 피아노 반주로 이관옥 씨의 소프라노독창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와 같은 본말 전도가 변화 있는 아나운스 멘트를 추구하려는 악치들에 의해 횡행되었다.
『다음 들으실 곡목… 지금 들으신 곡목…』을 연발하며 경음악을 기계적으로 소개하던 아나운서는 군자가 아니었는지 『다음 들으실 곡목』을『다음 들리실 골목』으로 오발해 버렸다.
골목길로 미끄러져 들어간 아나운스 멘트는 막다른 장애에 부닥쳤다. 다음 곡은 샹송 「파리의 지붕 밑」…거짓을 방위하려면 또 하나의 거짓이 잉태하는 것, 정정을 하기 싫은 이소인의 머리에 나쁜 지혜가 번뜩였다.
잘못 들어선 것을 합리화하며 거침없이 주워섬긴 관광안내 일석,『다음 들리실 골목은… 파리의 뒷골목입니다.』
생경한 것을 연화하는 어렌지멘트의 기술을 아나운서는 몸에 붙여야 한다.
하나의 멜로디를 편곡하듯, 독립된 여러 개의 곡목을 일관된 무드에 감싸는 어렌지의 기술로『다음 곡목은…지금 곡목은…』하는 평판적인 소개 아나운스를 추방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의무적인 방식조차 번거롭게 느낀 아나운서는 날고기를 접시에 담아 내놓듯 요리를 거부하고 재료 그대로를 내던졌다.
전주가 흐르다가 빨간 불이 들어오면『다음 곡목』이나『입니다』를 거두절미하고 알맹이만 쏘아 붙인다.
『순애!』
『안개!』
이렇게 명사만을 내던지는 곡목 소개의 어조를 흉내 내며 음악통인 강찬선 아나운서는 웃겼다.
『설렁탕!』
『곰국!』
직역체로 옮겨 놓은 재즈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애끊는 강박을 한 선배도 있었다.
『누가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해외 진문을 삽입하면서 가요 곡을 보내던「직장음악」시간은 노래와 토픽이 늘 빙탄불상용이었다.
취사선택이 되지 않는 특신한 뭉텅이와 순서 없이 적어놓은 레퍼토리가 군혼하듯 차례로 짝이 지워졌는데 때로는 아이러니컬한 대비가 이루어졌다.
『거주지를 옮겨 가며 26번이나 결혼한 현대판 돈·쥬안이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NANA통신이 전했습니다. 다음 들으실 곡은 「춘향의 절개」!』
「아침은 또다시」에 자장가,「오늘도 명랑하게」에 비창,「행운의 메아리」에 이별의 노래가 나간 것은 무슨 대조의 미학이었을까?
그대는 아는 가 저「후니쿨리·후니쿨라」접목 사건을…
「이태리 가곡의 밤」을 녹음한 프로듀서 김, 아나운서 송은 둘 다 여자. 그리고 모두 약혼 중이니 얼마나 재잘대고 싶은 종달새의 계절이었을까?
원반이 돌아가는 동안 의자를 나란히 놓고,
『오우머 속상해, 어쩌면 내 양말이 벌써 전선(傳線-이라고나 하나? 일본발음이지―)갔니?』로 시작해서 6.25후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화제의 팽이는 돌고 도는데 구심점은 하나같이『그이』『그이는』『그이가』『그이와』였다. 그러니「후니쿨리·후니쿨라」를 「후니쿨라·후니쿨리」로 써 준 사람이나 그대로 읽은 사람이나 영혼은 피앙새 곁으로 풍선 여행, 남아있는 것은 발성기관 뿐인 것 같았다.
미스 송은『그이』에게 가고 미스 김 혼자 남아서 녹음된 테이프의 계시를 하다가 이「뭇토라·헛소리니」식 발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이 어떡해?』
서시처럼 찌푸리는 미스 김이 측은해서 노련한 기술자 박규진 씨는 지혜를 짜냈다.
그렇다. 후니쿨라·후니쿨리의 한가운델 딱 잘라 후반을 전반위에 접붙이면 정상화되지 않는가?
치밀한 테크닉이 필요한 이 수술은 곧 끝났다. 개안수술 한 사람 붕대 끌으듯 가슴 조이며 돌려보는 테이프….
『후니쿨리! 후니쿨라?』
말은 제대로 접목되었으나 엑센트는 기묘하게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었다.
터어키를「도루꼬」로 표기했던 일정 때, 외래어를 싫어하는 남자 아나운서 한분은「드리고의 세레나데」를『토이기의 소야곡』으로 번역하셨다는 만용의 전설이 있는데 터어키와 브로큰(Broken)은 인연이 있었다.
하루는「밀짚 속의 토이기」라는 음악 전표가 넘어왔다.
농업이 주산업이지만 밀만 재배할 리 없고 또 767만 평방킬로미터의 광대한 면적을 어떻게 밀짚으로 포장한다는 말인가? 자세한 것은 늘 사전에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복수의 S자를 간과해 버린 담당자는 저 위대한 케말·아타투르크가 세운 공화국과 크리스마스에 먹는 새를 혼동했던 것이다.
그리하여「Turkeys in the straw」―「밀짚 속의 칠면조」는 돌연변이 하지 않고 전파에 실려 나갔다.
그 맛대가리 없는 고기를 경축일의 식탁에 올리는 U.S.A는 1803년에 Kansas와 Arkansas를 사들여 성조기의 별을 두 개 늘였다. 두 스테이트는 인접해 있지만 지도상으로 중부와 남부로 갈리듯 주명도 발음이 다르며 그 이름은 논란 끝에 의회에서 결정한 것으로 하나는「칸사스」또 하나는「아칸소」.
어느 날 「아 칸사스의 나그네」라는 영탄조의 곡목이 배정되어 또 사전들을 뒤적였다.
물론「아칸소의 나그네」가 판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