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오늘은 백가쟁명 [막뒤의 삐에로 (下) ]

최철미 2015. 7. 4. 15:49

□ 오늘은 백가쟁명

번역이 서투른 것은 주체의식이 강한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레코드와 음악전표는 한국의 야당 따로따로 놀 듯 통합되지 않는 적이 많았다.
정정은 아무래도 명예롭지 못한 일, 더구나 아나운서가 희생타를 치는 셈이 되지 않는가?
어느 날 아침, 곡목을 두 번이나 정정해야만 했던 아나운서는 분노를 터뜨렸다.
『음악전표 기재 착오로 말미암아 레코드가 바뀌어 나갔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과장은 아나운서의 귀에 쓴 양약을 퍼붓고, 프로듀서와는 절교상태에 돌입했으나 아나운서들은 사이다 마신듯한다고 가슴들을 내리 쓸었다.
세털라이트·스튜디오가 한 때 가두의 총아였을 무렵, 출연자 한 사람이 곡목 틀린 것을 지적하자 민간국의 어느 여자 아나운서는『종종 그래요.』하고 자조 섞인 푸념을 방송한 일도 있었다.
음악과 얘기를 범벅여 아침 식탁에 곁들여 내던「희망의 속삭임」은 본격적인 디스크·쟈키로 각광을 받아 비교적 장수했다.
영화보다 먼저 수입된「콰이강의 다리 마아취」가 그 시그널.
방송과장은 아침마다 담당자를 불러 프로그램 성과를 분석 평가했다.
말에 당의를 입힐 줄 모르는 분이라 그 처방은 늘 썼다.
1주년이 되는 아침 미스터 최는 임금님 귀처럼 커져 있을 방송과장의 어이를 의식하며 프로그램 중간에 「오늘의 역사」를 전하다 말고 씨그널·뮤직을 틀어버렸다.
『왜 벌써 끊느냐는 과장님 전환데요.』
헐레벌떡 뛰어 온 보조 아나운서, 예기했던 전령이었다.
『좀 더 들어보시라구 해!』
휘파람 섞인 그 행진곡을 한참이나 더 튼 뒤에 미스터 최는 웃음을 참으면서 의기양양,
『작년 오늘, 지금 들으시는 음악과 함께「희망의 속삭임」이 탄생되었습니다.』
분석 평가 시간의 아나운서들 귀처럼 그날 방송과장의 입은 얼마나 씁쓸했을까?
화제는 대부분「제 2의 지식」이었으므로 DJ들은 얘깃거리를 섭렵하고 다녔다. 아침신문도 그 일종.
뜨끈뜨끈한 조간을 뒤적이던 아나운서는 경향신문의 스쿠우프를 발견하고 보도계로 뛰었다.
「간첩 박설원 체포」…형사에게 척상을 입히고 도주한 이 간첩사건으로 경찰이 여론의 집중타를 맞던 때이다.
『간첩 박설원이 체포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8시 뉴스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희망의 속삭임」의 인서어트.
8시에는 상보가 나가고 치안국 출입기자는 특종 상을 탔다.
그런데 아나운서는 시상식 광경을 건너다보며 곰처럼 손바닥이나 햝는 수밖에 없었다.
그 위대한 중국인은 대포 한잔 사지 않았던 것이다.
한 잔의 포도주가 여러 개의 컵에 희석된 것 같은 오늘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단일 채널이라는 희소가치가 소멸되면서 아나운서실의 본류도 여러 가닥의 지류로 갈려 지금은 소리의 홍수, 양이 질을 압도하고 있다.
국영에서 민영으로 옮긴 선배 한 분은 콜·싸인을 넣다가 본적과 현주소를 혼합해 버렸다. 『K…』하고 생각하니 앗차 여기는 문화방송, 『…아니고』할 수도 없고『…MBC』를 덧붙이니 결국 국명 약칭은『케앰비씨』가 되고 말았다.
부산 문화방송에서 분가해 온 한 사람은『HLKU…』하다가 『아니 KV』라고 제휴해 버렸다. U에서 V,V에서 WX가 잇달아 나오지 않기 다행이다.
대전국에서 출발한 박노설 아나운서는 호출부호를 넣으며,
『HLK…』다음의 약칭이 오리무중, I는 대전, A는 서울, 머릿속의 질서가 엉클어졌다.
알파벳을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내려가는데 창밖의 엔지니어가 손가락으로 크게 괄호를 그리자 비로소『…C』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혼돈」과「발전」이라는 두 추상명사는 그 의미에 얼마만한 상거가 있을까?
삐에로들은 오늘도 여기저기서 시간에 쫓기며 시간을 쫓고 막 뒤의 이야기는 낙엽처럼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