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2.17 (2.17) -보신탕 옆에서- 한 그릇의 보신탕을 끓이기 위해 봄부터 강아지는 그렇게 짖었나 보다. 한 그릇의 보신탕을 끓이기 위해 사람들은 개 집속에서 또 그렇게 짖었나보다. 배부르고 입가심에 가슴 조이던 먼먼 계절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잡혀와 허울 좋은 빽 속을 채우는 우리들 인간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8 (2.18)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꼭 일주일 째. 더구나 토요일이다. 아빠가 만약 살아계신다면 지금쯤 마산에서 돌아오셔서 같이 저녁을 먹을 텐데….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만 알았더라면. 오직 후회뿐이다. 끝없는 후회의 한숨뿐이다. 푸념뿐이다. 학교를 가도, 교회를 가도, 빵집을 가도,..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9 (2.19) 우울한 일요일이다. 언니 친구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와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나는 어리다고 아예 축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할 수 없지 뭐. 방문 걸어 잠그고 음악이나 듣는 수밖에. 아빠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인 마이마이. 서 부장님이 오셔서 아빠..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0 (2.20) 나의 이름은 개. 어릴 때의 아명은 강아지. 나에겐 예명이 많아, 찬기야. 멍멍이, 컹컹이…. 그리고 나의 별명은 최 윤경 이란다. 나의 취미는 친구가 전자 오락할 때 옆에서 돈 넣어주기. 나의 특기는 화장실에 앉아서 사색을 즐기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 그러니까 나. 내..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1 (2.21) 웬일인지 오늘은 그의 생각이 절실하다. 현경이가 그에 대해서 물어봤기 때문일까? 그땐 못 들은 체 흘려버렸지만, 그 때부터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오, 그 아름답던 사랑의 추억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이제 여인의 마음엔 쓸쓸한 여운만이 남아있구나! 흐흐흑. 그날 이후로 전화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2. (2.22) 내일이면 1학년도 끝이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밀려온다. 어른들 말씀엔 한창 좋은 때가 2학년이라고들 하지만. 늙어 간다는 것이 우리들은 무척 서럽다. 이제 후배들이 들어오면 언니 노릇도 해야 하고…. 이제 한 학년 더 올라갔으니 책임이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아유! 만사가 귀..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3 (2.23) 드디어 마지막 날. 몇몇 아이들은 아침부터 풀이 죽어 시무룩해 있더니, 마침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약간 섭섭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왔다. 거의 1년을 같이 생활해오다시피 했던 친구들. 반 편성 카드를 나눠줄 때 난 살며시 울었다. 수미도 울고, 현경이도 울고, 소영이도 울었..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4 (2.24) 점심 때 병원에 다녀왔다. 목이 붓고, 매우 따갑고 아팠기 때문이다. 난 그저 감기려니 했는데, 언니 말이 인파선 부은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억지로 병원을 가라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단순한 감기야.” 의사선생님의 말씀이었다. 공연히 주사 한 대 맞고 돌아왔다. 집에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5 (2.25) 또 토요일. TV는 Sports, 재방영물…. 지루한 것들만 보여주고. 심심하던 차에 현경이 에게 전화가 왔다. 동시 상영하는 영화 두 편을 보러가자는 것이었다. 제목은<부시맨>과 <사관과 신사>. 보나마나 불편한 의자에, 비오는 화면에 잘려나가는 필름…. 고생만 할 것 같아 일부러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6 (2.26) 기대가 잔뜩 부풀어 오른 아침. 오늘은 언니네 학원서클인 “해오라기”가 초연 다방에서 1일 찻집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한 몫 해 보겠다는 생각에 매우 흐뭇했다. 아니, 그것보다 Y를 만나게 된다는 기쁨이 가슴을 방망이질 했다. 바람이 제법 불고 있었다. 도착해보니 매우 어..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