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1.18 (1.18) 오, 주여. 각자에게 제 자신의 죽음을 주소서. 자기의 사랑과 의의와 고난이 깃들인 그 사람의 생애에 우러나오는 죽음을. 왜냐하면 우리는 껍질과 잎사귀에 불과하므로 제가끔 자기의 내부에 안고 있는 죽음은 그 주위를 온갖 것이 회전하는 열매이오다. 그 열매를 위해 소녀들은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19 (1.19) 내가 죽어야만 할 때, 만약 그때에 생각할 여유가 주어진다면 난 과연 무엇을 생각할까? 일생을 헛되이 지내버린 일, 잠자며 살아버린 일, 어리둥절하게 지낸 일들, 인생의 선물을 완전히 음미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할까? “무슨 까닭이지?” 벌써 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다지도 빨리..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0 아빠께서 요즘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다. 엄마가 다녀간 이후로 난 아빠에게 언제나 냉소를 띄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 한 것만 같다. 병원에 며칠 입원하셨다가 퇴원해 집에 계신 아빠. 며칠째 회사도 안 나가시고 누워계신다. 간경화증이라는데, 발견이 늦어 자칫 잘못하면 암..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1 (1.21) 방학이 시작한지도 꼭 한 달째. 이젠 그 무수한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고, 잔뜩 밀린 숙제만이 먼지에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 달 동안 도대체 무얼 했는지…. 정말 비탄에 잠길 수밖에 없다. 계획할 땐 아르바이트니 뭐니 왕창 하려 했는데…. 막상 하려하니 잘 되..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2 - 그림자 (시) -그림자- 언제부터인가 나의 모양을 하고 길게 누운 당신은 이 하늘 아래 가장 가련합니다. 빛살은 바래고 수십 해 몸부림쳤다던 지난 역사의 산 증인 바로 나. 당신은 나를 닮으려 했지만 짓궂은 햇볕의 장난으로 나의 실루엣이어야만 했습니다. 눈, 코, 입…. 어느 하나 가져보지 못한 당..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2 - 절규 (시) (1.22) -절규- 소년이여! 누구를 위해 부르짖는가? 겨울은 길게 가고 가지는 힘을 잃었다. 계절의 끝으로 달리는 소녀의 마음…. 소년이여! 무얼 찾으려 외쳐대는가? 주인 잃은 메아리가 다시 돌아 알려온다. 멀리 내보낸 슬픔의 찬가. 아름다운 생의 절규…. 소년이여! 울부짖거라. 나는 누..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3 (1.23) 아침 일찍부터〈파리 대왕〉을 읽고 있었다. 막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는 아주 급한 목소리로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K였다. 난 몹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가 눈에 불을 켜고 날 감시하고 있는데 하필이때, 마침, 내일 모레가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4 (1.24) 언니와 아빠가 서울에 집을 보러갔다. 이제 곧 있으면 대전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된다. 서울→전주→대전, 그리고 다시 서울. 후-.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하긴, 곳곳에 친구들이 있으니 좋은 것 같다. 서울에 가면…. 촌놈이라고 괄시를 받겠지? 그럴수록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5 ( 1.25) 예비소집일. 워낙 늦게 일어난 덕택에 학교에 늦게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 어딜 가나 숙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지겨운 청소를 마치고, 친구들과 시내로 향했다. 미술숙제에 전람회 구경이 있기 때문에 화랑을 돌아다녔다. 롯데리아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편지..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1.26 (1.26) 인간은 하나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베어버리기 위해서 이 우주가 온통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가닥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비록 우주가 그를 베어버린다 할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한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