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2.12 (2.12)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어제 하루를 지새웠다. 오늘은 소복이 도착해서, 난 생전 처음 소복을 입어봤다. 이렇게 일찍 이런 것을 입을 줄은 몰랐는데…. 오늘은 손님들의 방문이 좀 뜸했다. 하지만, 향냄새는 여전히 코를 찔렀다. 두 번째 맡아보는 냄새였다. 첫 번째는 작은 할머니 돌아..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3 오늘은 아빠의 장례식 날. 아침 일찍 서둘러 입관을 했다. 목사님이 관 뚜껑을 덮기 전에 아빠 얼굴을 보라고 했다. 난 오빠의 어깨 너머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희미하게 벌어져 있었다. 주무실 때의 모습과 별 다른 점이 없었다. 단지, 얼굴 어딘가 조금 퇴색한 것 같이 보일 뿐..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4 (2.14) 조촐한 장례식도 끝나고, 잔치 집같이 시끄럽던 집안도 조용했다. 몇 안남은 친척들도 내일 삼우제 끝나면 다들 돌아간단다. 너무 허전했다. 아빠라도 살아계신다면, 살아계신다면….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아빠의 슬리퍼를 질질 끄는 듯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빠의 그 나지..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5 (2.15) 삼우제날. 소복을 입고 죽산으로 갔다. 장례식 때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아빠 무덤 옆에는 국화꽃들이 시들은 채 버티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울적했다. 산을 내려왔다. 고모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알래스카 고모도 부안으로 가버렸다. 대전에 돌아올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6 (2.16) 오랜만에 나흘 결석 만에 학교에 갔다. 아이들의 수군대는 소리와 이상한 눈초리가 참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아무하고도 이야길 하지 않았다. “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러니? 왜 애들하고도 어울리려 하지 않아? 왜 그러니?” 현경이의 지나치는 듯한 말투였다. 현경이는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7 (2.17) -보신탕 옆에서- 한 그릇의 보신탕을 끓이기 위해 봄부터 강아지는 그렇게 짖었나 보다. 한 그릇의 보신탕을 끓이기 위해 사람들은 개 집속에서 또 그렇게 짖었나보다. 배부르고 입가심에 가슴 조이던 먼먼 계절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잡혀와 허울 좋은 빽 속을 채우는 우리들 인간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8 (2.18)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꼭 일주일 째. 더구나 토요일이다. 아빠가 만약 살아계신다면 지금쯤 마산에서 돌아오셔서 같이 저녁을 먹을 텐데….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만 알았더라면. 오직 후회뿐이다. 끝없는 후회의 한숨뿐이다. 푸념뿐이다. 학교를 가도, 교회를 가도, 빵집을 가도,..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19 (2.19) 우울한 일요일이다. 언니 친구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와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나는 어리다고 아예 축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할 수 없지 뭐. 방문 걸어 잠그고 음악이나 듣는 수밖에. 아빠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인 마이마이. 서 부장님이 오셔서 아빠..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0 (2.20) 나의 이름은 개. 어릴 때의 아명은 강아지. 나에겐 예명이 많아, 찬기야. 멍멍이, 컹컹이…. 그리고 나의 별명은 최 윤경 이란다. 나의 취미는 친구가 전자 오락할 때 옆에서 돈 넣어주기. 나의 특기는 화장실에 앉아서 사색을 즐기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 그러니까 나. 내..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
1984.2.21 (2.21) 웬일인지 오늘은 그의 생각이 절실하다. 현경이가 그에 대해서 물어봤기 때문일까? 그땐 못 들은 체 흘려버렸지만, 그 때부터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오, 그 아름답던 사랑의 추억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이제 여인의 마음엔 쓸쓸한 여운만이 남아있구나! 흐흐흑. 그날 이후로 전화 .. 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2014.06.15